왜 인민주권인가? 대한민국 국민주권의 허와 실.

//
//
글은 프랑스 대혁명 당시의 상황을 보여준다.
하지만 오늘날 대한민국의 현실을 얘기해 주기도 할 것이다.
 
——————————————————————–
 
 인민주권론자들은 부르주아의 국민주권론에 대비되는 인민주권론을 주장한다.
부르주아가 만든 헌법이 ‘주권은 국민에 속한다.’고 했을 때, 적어도 주권이
군주의 것이 아니라는 점은 확인됐다. 그런데 ‘국민에 속한다’ 는 주권은 말로만
그럴싸했다. 국민은 주권의 보유자였지만 행사자는 아니었다. 주권을 가진 국민은
구체적인 한 사람 한 사람이 아니라 추상적인 덩어리로서의 국민이었다. 그러니
국민 개개인으로 주권을 나눌 수도 없고 주권 행사에 참가할 방법도 없으며 ,구체
적인 누군가에게 권력을 위임함으로써만 비로소 주권을 행사할 수 있었다.
 
 따라서 선거가 가장 중요한 제도였다. 하지만 선거는 시민의 권리 행사가 아니었고,
국민주권의 일부인 의원 임명권 행사 즉 공무 집행에 불과한 것이었다. 게다가 그
선거는 일정 수준 이상의 납세 능력이 있는 사람 중에서 상당한 재력가를 뽑는 제한
선거였고 유권자는 일단 선출된 대푱에게 간섭할 수 없었다. 의원은 자신을 선출한
선거구의 대표가 아니라 ‘전 국민의 대표’ 니까 선거민과 선거구에 구속되어서는
안 된다는 논리였다. 따라서 유권자는 자신이 선출한 대표에게 무슨 일을 하라고
명령할 수도, 일을 못한다고 소환할 수도 없었다. 의원은 다음 선거에서 평가받는
정치적 책임만 질 뿐이었다. 그러므로 ‘주권이 국민에게 있다’는 말은 선출된 대표
의 정당성이 국민에게서 비롯되었다는 의미에 지나지 않았다.
 
 이에 비해 인민주권론자들이 주장한 참정권은 주권 행사를 권리로 여기고, 공무 
취임 기회의 평등과 압제에 대한 봉기권을 보장하고 있었다. 여기서 유권자인 인민
은 추상적 덩어리인 국민과 달랐다. 인민은 주권을 소유할 뿐만 아니라 직접 행사
하는  존재였다. 유권자의 의사는 유권자 전체의 1/n 씩 모여 표현된 것이기 때문에
대의제도는 최선이 아니라 차선일  뿐이었다. 선거도 제한선거가 아닌 보통선거로
하고, 면책 특권의 부작용을  방지하고 유권자가 정치에 긴밀하게 참여하기 위해
선출한 대표는 유권자의 의사 테두리에 묶여 있어야 한다.(이를 명령적, 기속적 위임
이라고 한다) 따라서 대표는  자신을 선출한 지역구 유권자의 의사안에서만 대표권을
가지며, 지역 구민의 의사에 따라야 하고 그들에게 보고할 의무가 있었다. 만약에
유권자가 위임한 대로 하지 않으면 위임은 무효가 되며 위임자의 의사에 따라 파면
됐다. 이를 소환(recall) 이라 하는데, 그것의 점차적 확대도 명시되어 있었다. 또한
유권자는 공무원에게 일상적인 통제권과 파면권을 가졌다.
 
 류은숙 ‘인권을 외치다’ – ‘선언을 넘어선 진정한 평등을 외치다’ 중에서   
 
ps. 프랑스 혁명 당시의 국민주권과 현재 대한민국의 국민주권과의 차이는
     제한선거에서 보통선거가 되었다는  점과 선거권이 단순한 공무집행에서
     주권행사로 간주되고 있다는 점이다.